독도일지 제43화

현장송 | 기사입력 2024/06/11 [21:41]

독도일지 제43화

현장송 | 입력 : 2024/06/11 [21:41]

대마도는 세종실록, 대동여지도 등에 조선영토 부속 도서. 세종 원년 14196월 대마도 포고문에 조선 영토임에도 바다건너 변방에 있어 관리가 소홀한 틈을 타 일본인이 들어와 거처를 삼기 시작했다.”라고 적시돼 있다.

 

대마도는 임진왜란 1592년 전까지 조선이 경차관(敬差官), 체찰사(體察使)를 파견 통치했다. 대마도 정벌 1419, 세종 원년은 대마도는 본래 조선 땅이라는 태종의 교유문(敎諭文)이 근거였다. 교유문에는 대마도는 본래 조선 땅이다. 다만 넓은 바다로 막혀있고, 또 좁고 땅이 척박함으로 왜인들이 거류하게 두었더니 개 같이 도적질하고, 쥐 같이 훔치는 버릇을 가지고 경인 1590년부터 뛰놀기 시작했다.”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임진왜란 1592년을 일으킨 일본이 대마도를 무력으로 강점했으나 대마도 의병들이 결사항전으로 격퇴, 그 전적비(戰蹟碑)가 섬 도처에 남아있다. 대마도 사람들은 생활필수품을 고려나 조선에서 조달했고 조선 관직을 요청했다.

 

1862년 서구 열강과 일본 영토에 대한 합의에서 대마도는 조선 땅, 오가사와라 군도(小笠原群島)는 일본령으로 한다.”는 것을 근거로 1968년 미국은 오가사와라 군도를 조건 없이 일본에 내줬다. 때문에 우리는 대마도를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해서도 안 된다.

 

19451015일 정문기 박사는 일본의 무조건 항복에 맞춰 대마도 환속을 서둘러야 하고 대마도 조선 환속(還屬)만이 동양평화의 질서라고 대마도 반환을 처음 제기했다.

 

1723년 대마도 학자 등정방(藤定房)이 편찬한 대주편년략(對州編年略)에도 대마도는 고려국 목이다.”했고 일본 고대사 일본서기(日本書紀)에도 한향지도(韓鄕之島)’-한국의 섬이라고 했다. 대마도는 경상도 계림경주 관할이었으나 우리 무관심 탓에 1870년대에 완전히 일본화 되어 일본이 실효 지배하게 되었다.

 

194917일 이승만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대마도 반환 문제를 거론했다. 818일 정부수립 3일 만에 대마도는 우리 땅이니 일본은 속히 반환하라!” 촉구하고, 일본이 항의하자 외무부를 시켜 9대마도 속령(屬領)에 관한 성명을 발표했다.

 

1949118일 제헌의원 31명이 대마도 반환 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 샌프란시스코 미일 강화 회의에서 대마도 반환을 관철시킬 근거를 마련했으나 1950625 전쟁이 터지면서 공산주의와 이념싸움으로 나라 전체가 대공황에 빠져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유엔 참전 16개국 군사와 공산주의가 맞서 싸우는 와중에도 대마도 반환 요구는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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