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별초일지(三別抄日誌)를 쓰면서

현장송 | 기사입력 2020/08/26 [22:07]

삼별초일지(三別抄日誌)를 쓰면서

현장송 | 입력 : 2020/08/26 [22:07]

 

▲ 저자 현장송 기자     ©

 

화성타임즈는 이번 19호부터 삼별초일지제목의 역사서사시를 연재한다. 삼별초일지 이야기는 1972년부터 시작된다. 저자 현장송 기자는 1971년부터 2004년까지 34년 동안 교직생활을 하면서 삼별초에 대한 역사적 자료를 수집했다. 이어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2014년경 집필을 시작해 201812월 오랜 집필의 수고를 마치고 202021일 세종문화사에서 초판을 발행했다. 현재 화성타임즈 시니어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 현장송 기자는 삼별초일지를 화성타임즈 신문에 연재하기로 하면서 역사적 검증도 기대하고 있다

 

918년 고려가 건국되고, 2018년은 1100주년이다.

 

국립 제주박물관과 나주박물관 그리고 강화역사박물관이 삼별초와 동아시아라는 주제로 국내 20개 기관과 일본 7개 기관의 협조로 유물 570여 점을 가지고 327일부터 60일간 전시했다.

 

내가 삼별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였다. 그것이 30대 초반 이었던 1972115일 풀무학원에서 함께 근무하셨던 진도에 사시는 金鍾北 선생님 댁을 방문하면서였다.

 

그때 폐허로 변해가는 산성을 보면서 누가 언제 왜 쌓은 성일까 하는 의문이었다.

 

그간 별초군의 함성은 내 가슴 한쪽에서 모기소리 만큼 작은 소리였기에 없는 것 같은 소리였다. 그리고 그간에 몇 번인가 강화도를 오가면서 그 소리는 점차로 커지기 시작하여 환청처럼 번지기 시작하였다.

 

그 무렵 나는 남한산성 밑에 살고 있었다. 그러면서 남한산성 일지를 쓰고 있었다. 그 때에삼별초일지도 기필코 완성해야 할 내 책임 같은 것으로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별초용사들로 조직한 선발군이란 말로 오늘의 용어로 하면 특수군이었다.

 

삼별초 역사 속에는 이제까지 없었던 내용이 있다. 그것은 노비해방이다. 배중손 장군이 대몽항전에서 하층민들의 애국심을 불러일으켜 대몽항쟁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배중손 장군은 나라의 운명은 노비제도를 없애고 모두가 같은 인권을 인정할 때 나라가 올바르게 성장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가 강화도에서 개경환도(開京還都) 하는 고관대작들의 짐 보따리 속에서 노비 문서를 찾아내 노비들 앞에서 불태움으로서 전국 노비들이 삼별초 항쟁에 뛰어들게 하였다.

 

가까이는 강화도(江華島) 이작도(伊作島) 자월도(紫月島) 승봉도(昇鳳島) 소홀도(召忽島) 문갑도(文甲島) 대부도(大阜島) 할미섬 대섬 띠섬 등 섬 주민들은 물론 멀리 내륙깊이까지 소식은 순식간에 번져났다.

 

노비들은 거제도에 몰려들었다. 그들은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기꺼이 나라를 위하여 바쳤고 배중손 장군을 따랐다.

 

그리고 죽은 듯 살아 온 날을 후회하며 억압과 폭력으로 군림해 오던 귀족들을 향하여 노비도 사람이라는 것을, 노비의 피도 붉고, 노비도 아플 줄 알고, 노비도 꿈 꿀 줄 안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삼별초군을 없애려 혈안이 되었던 것은 고려 조정이었고, 자기 백성을 죽이기 위하여 끝내 몽골까지 끌어들였던 세력들 그가 바로 이 나라 임금이었고, 고려의 친원파 고관대작들이었다.

 

거제도에서 패하고 탐라도에 갔을 때 별초군은 패잔병 70여명 정도였지만 탐라도민들이 목숨 걸고 패잔병을 도와 만 여 명, ·원 연합군과 싸울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노비들의 목숨 건 싸움 때문이었다. 노비들이 나라의 명예를 지켰다. 하찮게 여기던 그들이 이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내었다.

 

삼별초와 노비들 항쟁은 1231815일 몽골의 1차 침입을 시작으로 12599차까지 28년간 이어졌고, 1296년까지 38년간 지배를 받아 66년간이나 그들에게 눌려 살았다.

 

백성들이 피 흘리며 싸우는 동안 지배층들은 섬에 들어가 호화생활로 호의호식하며 권력다툼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 상황은 고려에서 조선으로 임진왜란으로 병자호란으로 동학란으로 19193.1운동으로

 

4.19, 5.16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또 이어질 것이기에 우리는 역사에서 역사를 배워야 한다.

 

물이 흘러야 강물일 수 있는 것처럼 그리고 흘러야 썩지 않을 수 있고 새 역사를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땀 흘리고 피 흘린 것은 늘 백성들이었다.

 

지배층들은 적들과 합세하여 더 짜먹고 핍박하고.....

 

역사는 너무 어렵다. 때문에 읽으려들지 않는다. 역사를 역사에서 배우려하지 않기에 역사 단절이 온다. 매일 한강물을 들이켜면서 한강의 뜻도, 의미도 모르는 사람들!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을 보면서도 독도의 역사를 읽어보지 않는 국민들!

 

임진왜란으로 고통 받았고 병자호란으로 참혹한 상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역사를 읽으려하지 않는 백성들!

 

삼별초의 난이 있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용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 과거 역사를 읽지 않는 백성은 다시 또 그런 일을 겪을 수밖에 없다.

 

역사는 읽어야 한다. 오늘 날에는 오늘의 언어와 문자로 읽어야 한다.

 

내가 한강을 중심으로 한 역사를 <태풍이 눈뜨는 강>으로 쓰면서도 <독도일지>를 쓰면서도 <남한산성 일지>를 쓰면서도, 그리고 <삼별초 일지>를 쓰면서도 가장 염두에 두었던 것은 역사 읽히기였다.

 

역사는 살아있는 생명체다. 때문에 역사는 반복 된다.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읽고 알아야 한다. 읽고 알게 하기 위해 읽기 쉬운 가장 짧은 문장으로 핵심을 뽑아야 했었다. 그것이 시 형식을 빌어 서사시로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때문에 내가 쓴 시는 내가 쓴 것이 아니다. 역사가 쓴 것이다. 궁색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여

 

읽혀야 하겠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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