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루가치(達魯花赤)로 고려를 괴롭힌 몽골의 오늘

현장송 | 기사입력 2020/09/09 [20:42]

다루가치(達魯花赤)로 고려를 괴롭힌 몽골의 오늘

현장송 | 입력 : 2020/09/09 [20:42]

▲ 저자 현장송 기자     ©

 

한글을 수입하는 나라, 쓰기 어려운 문자 배우기 어려운 언어, 아시아 대륙 깊숙이 처박혀있는 나라 몽골은 한국을 ‘Slongus’라 부른다. 무지개란 뜻이다. 한국인을 사돈이라고 한다.

 

세계를 정복한 원나라가 고려에서 아름다운 공주를 왕비로 모셔가면서 아름다운 무지개가 뜨는 나라’ ‘Slongs’라 했던가?

 

21세기 몽골수도 울란바토르에서는 솔롱고스열풍이 대단하다. 한국형 미남이어야 장관이 되고, 백화점에선 한국의 겨울연가가 울려 퍼지고, 화장품 전시장엔 아모레, '카스는 그들의 맥주가 돼 버렸다.

 

승용차는 봉고, SUV, 버스도 한국산이다. ‘의정부행’, ‘추월금지’, ‘과속금지등 한글 안내문이 붙어있어야 한국산임이 확인된단다.

 

몽골인의 솔롱고스는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는 것이다. 동남아인들이 코리안 드림을 갖는 것처럼 그들은 솔롱고스를 찾아 한국에 오고 싶단다.

 

한국에 온 2만 명 송금액이 몽골경제의 10%에 해당한다. 인구 270만 명, 국민총생산 11억 달러, 세계를 제패한 징기스칸의 나라 대원(大元)이 어찌 이렇게 되었는가?

 

여대생 솔롱고의 아버지는 회사 간부, 어머니는 대학교수, 부모가 받는 돈은 한국 돈 20만 원 정도. 솔롱고는 유학 중 서울에서 아르바이트로 번 돈이 100만 원, 누군가는 솔롱고에게 한국 사람들은 뉴질랜드를 재미없는 천국이라 했고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이라 했다나.

 

누군가 솔롱고에게 왜 지옥에 살려하느냐?”라는 농담에 몽골은 재미없는 지옥이라 했다.

 

몽골이 시장 경제를 시작한지 10! 체제가 정착되지 않은 신생 민주국가! 실업률은 20%이며, 대졸 4명 중 3명이 실업자다. 도시 변두리에 빈민촌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난다.

 

징기스칸, 쿠빌라이 칸이 지배했던 나라! 그들 설명대로 한반도에서 불가리아 평원에 걸친 제국이 어찌 이렇게 되었는가?

 

이제 한국경제는 그들보다 400배나 더 큰 솔롱고스가 되었다. 정복하는 시대가 아니라 협력하는 시대, 공생의 시대다.

 

몽골이 지배했던 나라는 한반도에서부터 중국 전역. 러시아 폴란드, 이란, 아프간, 우크라이나, 헝가리까지 뻗었었는데.........

 

원사(元史)에는 특별한 개국 공신이 아니면 혼인관계를 맺을 수 없고 일단 부마(夫馬)가 되면 제왕의 대우를 받는다. 고려 충열왕은 성종의 즉위식에 참석하여 권력서열 7위에 앉았다.

 

몽골 비사에는 징기스칸의 시조모 알랑고아가 고주몽의 딸이었다.

 

고려와 몽골의 뿌리로 보면 바이칼의 코리족이 나뉜 것이다.

 

대 몽골제국이 고려를 부마국으로 대우한 것은 태자 전의 역할이었지만 피를 나눈 형제국으로써 세계경영에 동참시키려는 의도로 읽힐 수 있다.

 

원종의 아들 ()은 원의 수도에서 왕의 학습을 받고 귀국해 39세에 충열왕으로 즉위한다.

 

쿠빌라이 칸은 16세의 딸을 왕비로 보낸다. 그가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

 

고려 역사에서는 원 황실과의 결혼을 식민 속국 전략으로 보지만 원나라의 부마가 된다는 것은 친족관계를 인정함으로 그 지위가 실권에 이르렀다.

 

21세기 몽골은 인구 300만의 가난한 나라지만 한국의 16배가 넘는 영토와 엄청난 자원대국으로 세계열강들이 넘보고 있다.

 

남북이 통일하여 몽골과 연대연방 국가를 만들 수 있다면 과거 위대한 역사를 다시 쓸 수 있지 않을까? 징기스칸은 고구려, 발해 왕가의 후손이었다.

 

 

 

800여 년 전 고려 말, 몽고로부터 90여 년 간이나 침략과 압제를 받을 때 끌려간 수많은 동포들과 강화도에서 진도에서, 그리고 탐라도에서 포로로 끌려간 26만여 고려백성들은 속전(贖錢)을 주면 다시 고려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재력이 없는 백성들은 인간 시장에서 미모로 환산 되거나 노동력의 가치로 환산하거나 늙고 젊음을 따져 값이 매겨져 매매되었다.

 

더러는 몽고 황실의 제2황후가 되었다가 태자를 낳아 정실 황후가 된 진주 강 씨 기()황후와 인종의 2황후 3황후도 있었지만, 수만 명 다른 처녀들은 몽고 황실의 구중궁궐 속에 유폐된 채 일생을 성노리개로 살다가, 왕이 죽으면 그들 생목숨을 끊어 왕과 함께 순장해버렸다.

 

순장을 피한 사람들은 전쟁에서 돌아온 장병들에게 내리는 왕의 하사품으로 그들 성 노리개로 노예로 비참하게 살다가 일생을 마쳤다. ()나라 순종(順宗)이 죽자 후궁에 거처하던 수십 명의 고려인들은 죽음이 기다리는 다른 전각으로 내몰렸다,

 

몽고 관리들에게 사정없이 두들겨 맞고 성()을 유린당하다가 전각 대들보 올가미에 목을 매달아 숨이 끊어지면 왕의무덤에 함께 묻어버리는 순장품(殉葬品)이 되었다.

 

힘없는 민족으로 태어나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 강제로 죽임을 당한 후에도, 그들 시신은 끝내 평안을 얻지 못하고 몽고왕의 무덤 속에 들러리로 묻히고 만다. 다루가치(達魯花赤)'진압에 종사하는 사람'을 이르는 몽골어이다. 몽골은 다루가치를 설치해 정복지를 통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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