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별초 일지-제7회

1259년 7월 4일. 쿠빌라이를 택하다!

현장송 | 기사입력 2021/05/14 [16:34]

삼별초 일지-제7회

1259년 7월 4일. 쿠빌라이를 택하다!

현장송 | 입력 : 2021/05/14 [16:34]

▲ 저자 현장송 기자

 

이른 새벽, 고려를 향해 망궐례(望闕禮)를 행하고, 다시 행장을 차려 울란바토르를 향해 중원을 지나던 중 이번엔 몽골제국의 몽케 대칸이 조어산(釣魚山) 진중에서 사망했다는 급보를 접한다. 마른하늘에 뇌성벽력 바람까지 몰아치는가!

 

다음 5대 대칸은 누가 될 것인가. 아릭 부케일까. 아니면 쿠빌라이일까.

 

멍케 칸이 남송정벌을 떠나면서 몽골제국 통치를 아릭부케에게 위임 했다는 정보도 있고, 대칸을 선출하는 쿠릴타이를 개최할 권한까지 아릭부케가 가졌단 소식도 있다.

 

울타리로 기어드는 마파람 같이 정신을 가다듬을 수조차 없는데 태자 전은 갑자기 신접한 사람처럼 쿠빌라이를 택하고 그에게 항복하기로 결정 한다. 조건으로 볼 때 최선이 아니라 차선으로, 차선도 못될 고려가 지구상에서 없어질지도 모르는 아찔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 선택은 세계 역사를 바꾸고, 고려 역사도 바꾸는 순간이었다. 남송 정벌을 중단하고 카이펑으로 올라오던 쿠빌라이는 고려 태자 전 일행을 맞이하면서 크게 감동 고무되어 외쳤다.

 

당 태종이 몸소 공격해서도 한발자국도 들여놓지 못했던 나라 그 나라, 고려 세자가 항복사절단을 이끌고 나에게 항복하러오다니! 이것은 하늘의 뜻이다!”

 

쿠빌라이는 고려태자 항복사절단을 접하고 스스로 쿠릴타이를 개최하여 형 아릭부케를 축출하면서 신들린 몸짓으로 몽골제국의 5대 대칸에 오른다.

 

쿠빌라이 대칸은 고려를 솔롱고스(Solongus)’라 불렀다. ‘무지개꿈을 꾸게 한 나라, 칸이 될 수 없는 자리에서 칸이 되게 한 나라! 고려 태자에게 자신의 딸을 주어 몽골 칸의 위력으로 왕 위에 오르게 하여 24대 원종이 되었다.

 

두 사람 모두 왕이 될 수 없는 자리에서 왕위에 오른 일은 처음부터 하늘이 정한 일이었나. 뽀얗게 안개 피어나는 새벽 혼절하는 기쁨인가.

 

林衍(임연)에 의해 폐위되었다가 몽골 세조(世祖)의 외교적 압력으로 다시 복위한 원종(元宗)이 몽골에 입조하여 몽골군을 이끌고 고려에 돌아와 개경환도와 삼별초 해산령을 명령함으로써 1270년 출륙환도가 단행되었다. 출륙환도의 실행은 바로 삼별초의 항쟁으로 이어짐으로써 고려가 개경정부와 삼별초 항몽정부로 나뉘어 투쟁하는 형국이 되었다.

 

고려가 섬에 들어가 나라를 지키겠다는 해도입보책(海島入保策)은 항전을 장기전으로 연장하기 위함이다. 개경환도(出陸還都)는 대몽항전을 포기하는 일이므로 자주성에 커다란 손상을 가져왔다. 그러나 출륙환도 거부가 자주적인 의지였더라도 항전 기간이 길어짐으로써 백성이 입는 피해가 컸기에, 출륙환도는 일찍 실현되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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