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별초 일지-제11회

1270년 5월 30일(원종 11) “지휘권을 배중손 교위 당신에게 맡기겠소!”

현장송 | 기사입력 2021/07/07 [18:49]

삼별초 일지-제11회

1270년 5월 30일(원종 11) “지휘권을 배중손 교위 당신에게 맡기겠소!”

현장송 | 입력 : 2021/07/07 [18:49]

▲ 저자 현장송 기자

 

절절한 아픔이 온 산하에 흩어져있는데, 글썽한 눈자위 고려는 언제나 아픈 땅인가. 새벽부터 섬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조정은 출륙환도(出陸還都)로 결정했지만 백성들 마음은 달랐다.

 

강화도에서는 권력자들에게 빌붙어 종노릇 하는 것으로 나라를 지킨다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개경에 가면 나라는 빼앗긴 채로 권력자들은 몽골의 종이 될 것이고, 하층민들은 종의 종으로 한층 더 비참하게 살아야 될 것이 훤히 보이는 듯 마음잡을 길이 없었다.

 

배중손(裵仲孫)이 야별초 지유(指諭) 노영희(盧永禧)를 찾았다. “장군! 이대로는 안 됩니다. 나라를 몽골에게 바치는 결과를 가져올 뿐입니다. 백성들은 몽골제국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며, 피폐한 고려는 적의 손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장군께서 거침없이 적에게 빨려 들어가는 고려를 구하셔야 합니다. 저는 사력을 다해 장군을 돕겠습니다라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좌별초에 3,000, 우별초에 3,000, 신의군에 2,000여명이 있습니다. 삼별초 지휘부에는 100명 장군이 있으나 저는 좌별초 1대대 육번도방(六番都房) 400명 속에 있습니다.

 

2대대에도 400명이 있으나 야별초 최고 사령관이신 지유(指諭)께서 움직이지 않으시면 나라는 침몰하는 배와 같을 것입니다. 전군은 200명씩을 이끄시는 별장(別將) 20, 낭장(郎將) 20명과 1,000명씩을 이끄시는 중랑장(中郎將) 8명 등 전 지휘관이 거사에 참여하셨습니다.

 

신의군 한잉질동(韓芿叱同) 도령(都領)께서도 주저 없이 서명하셨습니다. 이제 좌별초 우별초 지휘권을 가지신 지유 노영희(盧永禧) 대장군의 최후 명령만 기다리는 중입니다. 전 지휘관들은 개경환도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말에 야별초 지유(指諭) 노영희(盧永禧)그렇다면 전군을 구정(毬庭 연병장)에 집합시키시오! 그리고 이후 모든 작전권을 배중손(裵仲孫) 교위(校尉) 당신에게 맡기겠소!”라고 결단을 내렸다.

 

배중손은 크게 절하며 크신 결단 감사합니다. 제가 장군님의 손발이 될 것입니다.”라며 호탕하게 말했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결단이었다. 군 편제상 대영웅(大英雄), 대장군(大將軍), 중랑장(中郎將), 방호사(防護使), 병마부사(兵馬副使), 교위(校尉), 군졸(軍卒)로서 배중손(裵仲孫)은 직위가 교위(校尉)였고, 12명 수군을 이끄는 20대 중반 애송이기 때문이었다.

 

현재 편제상으로 볼 때 소위에 해당되는 직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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