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병우 시니어기자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전쟁이 발발했다. 해방둥이인 내게도 그때가 생생하다. 내 고향 경기도 화성군 정남면 발산리 시골 동네는 전투 지역은 아니었지만, 전쟁의 불행은 그곳까지 찾아왔다.

칠월 초 오산 죽미령전투에서 들려오는 천둥소리 같은 포성은 창호지 창문은 물론 기둥까지 마구 흔들어 댔다. 그때 겁먹어 무서워하는 나에게 어머니는 두꺼운 솜 겨울 모자를 귀마개 삼아 씌우고 이불까지 둘러 덮여 안방에 숨겨주셨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어느 날, 아버지만 집에 남으시고 온 가족이 소 몰고 새미재로 피난하였다. 그러던 다음 날 오후에 포 소리 크게 들려 모두 호두나무 밑에 숨었는데 바로 위로 집채보다도 더 큰 군용기가 불붙은 채 낮게 날아가더니 “꽝” 소리와 함께 포탄과 소총탄 터지는 소리가 밤새 들렸다. 나중에 알아보니 미군용 수송기가 향남면 방울산에 추락한 것이었다.

안전할 거라 여겼던 곳이 불안해지자 우리 가족은 다시 집으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얼마 후 조용했던 시골 마을은 슬픔의 바다가 되었다. 우리 큰형님 또래의 청년들이 영문도 모른 채 강제로 의용군에 끌려갔기 때문이다. 용주사에서 잠깐 훈련받고 인민군복을 입고 한없이 남쪽으로 내려가 낙동강 전투에 투입되었다. 여태껏 소식 없으신 형님의 모습을 떠올리면 분단의 비극이 한없이 밉다.

1951년 1·4 후퇴 후 오산까지 밀렸던 유엔군의 반격을 하늘에서 보았다. 수십여 대의 미 공군 무스탕 전투기가 마치 에어쇼 하듯 적군을 향해 기총 소사하던 모습을 그냥 구경삼아 동네 마루터기에서 보았다.

집 앞 디딜 방앗간에서 나는 친구들과 M-1 실탄, 카빈총 실탄, 딱콩총 실탄을 가지고 터트리며 재미있게 놀기도 했다. 면 소재지 복판에는 폭탄 맞아 생긴 두 개의 큰 웅덩이에 물이 잔뜩 고여 있었다.

그 당시 아버지 따라 1952년에 입학한 정남초등학교에서는 교실이 모자라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그리고 운동장 나무 그늘 밑까지 교실로 사용했다.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연합군 사령관 맥아더는 초토화된 한국의 처절한 모습을 직접 살피곤 백 년이 지나도 결코 일어서지 못할 것이라 했다. 그러나 그때 그 어린아이들은 애국심을 마음속 깊이 품고 가난한 이 나라의 장래를 위해 열심히 배우고 익혔다. 그리고 각 산업전선에서 근면과 협동과 자립의 정신으로 최선을 다해 나라 발전에 매진하였다. 그 결과 불과 오십여 년 만에 가난이 물러가고 굳건한 오늘의 경제부국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웠으니 실로 세계에 자랑을 아니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