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이 터진 다음 해 여름쯤 옆집 아줌마네 집에 군용 지프차가 왔다. 차를 본 적이 없기에 구경삼아 얼른 뛰어갔다. 올라가 앉기도 하고 핸들도 만져보고 있는데 웬 군인이 오더니 그만 내려오라고 했다. 그 군인은 아줌마네 집에 다니러 온 장교의 지프차 운전병이었다.
아쉽고 서운해서 내려와 타이어를 슬쩍 걷어찼다. 그리곤 그 사람을 따라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새 아줌마가 부엌에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시집올 때 집이 좁아 우리 집에서 족두리 쓰고 잔치한 오촌 당숙모였다.
안방에 들어가니 웬 군인이 또 있었다. 나와 단둘뿐이었다(나중에 알았지만, 그는 육군 대위였다). 그는 내게 느닷없이 몇 살이냐고 물었다. 나는 일곱 살이라고 답했고, 생일도 묻기에 양력과 음력으로도 답했고, 집 주소도 묻기에 자랑하듯 명료하게 답해줬다. 내가 어리광 많은 막둥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골탕 먹이려는 그의 속셈을 눈치 못 채고 나는 제풀에 잘난 체한 것이었다.
그의 질문은 너무 쉬웠다. 또래 아이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아버지가 수십 번씩이나 가족들의 이름이나 생일 등을 가르쳐줘서 척척박사가 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쯤은 녹음테이프처럼 튀어나왔다. 그러나 부모님 성함을 아느냐고 묻기에 아버지 성함은 알지만, 어머니 성함은 몰라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고 아버지 성함만을 ‘○자, ○자, ○자’라고 말했다.
나는 자랑하고 싶어서 또 뭐 알고 싶은 것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뭐 이런 맹랑한 녀석이 있어’ 하는 눈초리로 물었다.
“네 이름은 무어냐?” “최병우(崔炳佑)요.” “그럼 그것을 한글로 쓸 줄 아니?” “물론 알지요.”
당시 나는 초등학교 입학 전이었지만 누이를 통해서 내 이름을 쓰는 것을 배워 알고 있었다. 나는 거칠 것 없이 뽐내며 방바닥에 손가락으로 내 이름 석 자를 신나게 써 보였다.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내게 그의 다음 질문은 나의 앞을 탁 가로막았다. 내가 알지도 못했고 상상하지도 못했고 아버지가 가르쳐주지도 않은 것이었다.
“한자로 네 이름을 쓸 줄 아니?”
이름 석 자를 한글로 겨우 쓰는 나에게 한자로 쓸 줄 아느냐고 물으니 난감하였다. 한자라면 우리 집 안방 다락에 올라가면 옛날 할아버지가 사고지(四古紙)에 붓글씨로 쓴 한문책을 뜯어서 제기차기에 썼을 때 본 것이 전부였다. 그렇지만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지금 내 이름을 한자로는 쓰지는 못하지만, 글자의 뜻은 알고 있죠.” “알고 있다고? 그래, 그게 뭔데?” 나는 자랑하듯 씩씩하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물론 진짜인 줄 알고 말한 것이다.
최 ‘최’자 병 ‘병’자 우 ‘우’자 요
이 말에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너 차 타고 싶지? 내가 태워 줄게.”하며 내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 군인과 함께 운전병이 운전하는 지프차 뒷좌석에 앉아 동네를 한 바퀴 신나게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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