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허를 취득한 지도 어느덧 삼 년, 그동안 면허는 장롱 속에 갇혀 있었고, 오류동역에서 근무처인 휘경역까지 찜통 지하철로 통근하였다. 그러던 중 남들처럼 승용차로 통근하고 싶은 마음에 수동식 ‘르망’ 승용차를 할부로 사서 집 앞 도로 옆에 커버를 씌워 놓았다. 나는 운전석에 올라앉아 신차의 시트 냄새를 맡으며 구조와 기능을 손과 눈으로 여러 번 확인하고 익혔다.
그리곤 어느덧 보름이 지났다. 그러나 한 번도 운전해보질 못했다. 커버도 벗겨내지 못하고 그 자리에 방치 차량처럼 놔뒀다. 운전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서 운행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아내와 동네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창피했다.
더구나 기대에 잔뜩 부풀었다가 실망하는 두 아들에게 어느새 나는 졸장부가 되었다. 이래선 안 되겠다, 아버지의 체면을 세워야지. 각오 끝에 도로 운전 연수를 했다. 장롱면허 삼 년 만에 다시 해보는 운전이라서 송두리째 잃어버린 운전 감각을 다시 찾기까지 며칠이나 걸렸다.
드디어 운전석에 올라 안전띠를 매고 자신 있게 핸들을 잡았다. 그러나 운전 교관이 옆에서 살펴줄 연수 때와는 달리 애를 먹었다. 오류동 집을 떠나 종로를 거쳐 휘경동 직장까지의 도로는 평탄했다. 그러나 집에서 오백 미터 지점에 있는 긴 경사로를 통과할 때는 항상 긴장했다. 한 번 이상은 꼭 멈췄다가 출발해야 했기 때문이다.
뒤로 밀리거나 시동을 꺼트리지 않으려고 왼발로 클러치를, 오른발로 브레이크와 액셀 페달을 재빠르게 옮겨 밟느라고 등줄기에 진땀을 흘렸다. 그 후 복잡한 종로통을 한 시간 정도 운전하여 목적지에 도착하면 정상 정복이나 한 듯 성취감이 들곤 했다.
운전을 시작한 지도 어언 사십 년이 흘러 이젠 국가에서 고령자의 운전을 제한하고 있는 시절이다. 나보다도 이웃의 안전을 위해 면허증을 반납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자가용 없이 지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기에 고민 중이다. 아직 정신이 멀쩡하고 건강하니 조금 더 연장해 보련다. 백 세 시대에 맞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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